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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영화학교는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진지한 영화 감상과 영화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영화 강좌 프로그램입니다.

[2016 모모 영화학교] 네오리얼리즘: 새로운 영화의 탄생, 4강) 루키노 비스콘티 - 네오리얼리즘의 데카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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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번째 네오리얼리즘 강의이자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에 관한 수업은 한창호 평론가에 의해 진행이 되었다.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를 좋아한다고 말한 한창호 평론가는 비스콘티가 네오리얼리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소개하며 비스콘티의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일관적 미학적 태도는 '데카당스'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엔 서로 상충되는 네오리얼리즘과 데카당스가 어떻게 융합이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이번 강의의 주제로 소개하며 본 가의를 시작했다.

 

 루키노 비스콘티는 1906년에 밀라노의 비스콘티 집안에서 태어난 귀족이었다. 그는 어릴때부터 예술에 큰 재능을 보였고 그의 집안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당시 영화는 존경받는 예술분야가 아니었고 루키노 비스콘티 자신도 그 재능을 활용하어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집에서는 예술가들을 초청해서 일종의 발표회들을 가지곤 했는데, 항상 그 연출에 비스콘티가 관여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곳에 온 코코 샤넬이 무대의 연출을 보고 놀라워하며 누구의 연출인지 물어보았고 그것이 루키노 비스콘티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프랑스 감독 장 르누아르를 소개시켜줬고 루키노 비스콘티는 이로 인해 르누아르의 의상, 프로덕션 디자인팀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다. 이렇게 비스콘티는 30살 즈음에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귀족 출신이었기에 비스콘티는 초반에 팀에서 미움을 받았는데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곧 인정받게 된다. 당시 르누아르는 <시골에서의 하루>라는 작품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미술 의상 담당이었던 비스콘티는 여주인공이 그네를 타는 장면을 촬영할 때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네]라는 미술작품의 컨셉을 활용한다.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며 모두가 그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 후부터 비스콘티가 일하기 편해졌다고 한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연출부와 어울리면서 그들의 영향으로 비스콘티는 이탈리아 귀족집안의 아들임에도 코뮤니스트(communist)가 된다. 이 사실은 이탈리에 큰 파장을 불러왔고 그에게는 "밀라노의 붉은 백작" 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한다. 그는 코뮤니스트로서 반(anti)파시스트적 사고를 가지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붙잡혀서 사형 선고도 받지만 극적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이러한 그는 전후 좌파 영화인의 리더로 여겨졌는데 비스콘티의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고 소개되기 어려웠던 점이 바로 이 이유에 의해서였다고 한창호 평론가는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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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호 평론가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개인사에 이어 네오리얼리즘과 '데카당스'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네오리얼리즘은 일상의 디테일 묘사를 통해 보여주는 정치사회적 테마, 허구보다는 허구 같은 현실 기록, 실제 장소에서의 촬영, 롱테이크 활용, 비전문배우 사용, 일상의 습관 기록과 같은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속성들은 네오리얼리즘의 정치성을 보여준다고 한창호 평론가는 설명했다. 허구를 만든다는 것은 부르주아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코뮤니스트였던 영화인들은 거부감을 가졌고 몽타주기법과 달리 롱테이크 기업은 감독에게 예술의 통제권이 몰려있지 않은 민주적인 기법이었기 때문에 네오리얼리즘 영화에서 자주 활용되었다. 또한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에서 자주 보여지는 일상의 디테일들은 일종의 인류학 보고서와 같은 인상을 주고 당대의 민중이 어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영화의 정치사회적 주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려던 네오리얼리스트들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네오리얼리즘을 서구에서 최초로 전개된 좌파 이데올러기의 좌파적 표현법이라고 생각할 때 "네오"라는 단어의 의미는 조금 더 깊게 이해될 수 있다. 

 

 '데카당스'라는 테마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설명될 수 있는데, '데카당스'는 본래 위스망스의 [거꾸로]라는 책에서 드러난 유럽 주류의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주류에 대한 혐오를 효시로 한다. '데카당스'란 추락하는 것, 병적인 것, 죽어가는 것, 퇴폐적인 것들을 의미하는데 결국 '건강하지 않은 모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건강한 것'이란 결국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고 협의한 통념들이기에 그러한 면에서 '데카당스'는 퇴폐와 동시에 하나의 윤리를 강요하는 파시즘에 반()하는 성격을 가진다. 보통 일반인들은 나치의 영향으로 인해 '데카당스'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데 비스콘티의 영화들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데카당스'는 '주류 사회에 대한 거리 두기'라 볼 수 있다. 부패한 주류의 통념속에서 그 통념의 가장자리를 부각시키고 그 통념의 가치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것이 바로 비스콘티의 목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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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호 평론가는 비스콘티의 영화중에서도 그의 데뷔작이자 네오리얼리즘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1943년작 <강박관념>을 예시로 들면서 수강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부랑자이고 여자주인공은 매춘부 출신의 여성인데 이것은 단 하나의 윤리를 강요하던 파시즘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하게 생각할 설정이다. 파시즘 정권 당시에는 체제 순응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고 선남선녀들이 주인공을 맡았는데, <강박관념>은 당대의 주류인 파시즘의 계몽적 경향과 전혀 궤를 달리하는 작품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네오리얼리즘의 "네오"라는 단어가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강박관념>은 시선처리, 권태, 두 남자, 접시와 병들, 사막이라는 요소들에서 데카당스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강박관념>에서는 다른 영화들과 반대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관음의 대상이 된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관계를 가진 후 여자가 남자의 몸을 바라보는 장면들을 집어넣고 남자의 누드를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관음하는 사람은 여자이며 관음의 대상은 남자로 설정해서 통념과 반대되는 ‘불건전한’ 시선처리를 보여준다.

 

정사장면 후 여자주인공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시골에서의 삶이 얼마나 권태롭고 따분한지, 남편을 얼마나 혐오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이때 여자의 모습은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연상시키며 반쯤 죽어있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비스콘티는 여배우에게 참고하라며 모딜리아니 화집을 주기도 하였다.  당시 1943년은 파시즘으로 인해 열심히 일하고 잘 살아보자고 해야하는 시대분위기가 있었는데 여자주인공의 권태로움은 그런 분위기의 정반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내에서 남자 주인공과 ‘스페인 남자’라고 불리는 남자가 만나서 친해지는 장면이 있는데, 매우 아름답게 촬영되었고 이 둘은 마치 데이트를 하는것처럼 연출된다. 영화안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고 모호하게 표현되었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이처럼 느껴지도록  표현해서 ‘건강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동성애에 대해서 그 판단의 유효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그리고 남편의 살해 후 남자와 여자는 주변의 의심을 받으며 식당을 계속해서 운영해나가는데 이들은 정신적 괴로움을 겪는다. 이걸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여자가 접시와 병들이 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마치 여자가 접시와 병들 안에 매몰되어있는 느낌을 주는데, 조르지오 모란디의 <정물-꽃병과 병>이라는 그림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창호 평론가는 설명했다. 정물화를 보면 사람들은 평온함을 느끼는데 이것을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죽은듯이 평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물화는 영어로 ‘Still Life’라고 불리는데, 직역하면 “생명이 정지되어 있는” 이며, 이러한 요소들은 접시와 병들에 둘러싸인 여자가 죽은듯한 인상을 느끼도록 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트럭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데 밖은 사람도 없고 마치 황야같고 생명이 없는 듯한 느낌을 주며 ‘저게 정말 이탈리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폐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곧 전쟁의 상처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끝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모래사장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데, 사랑하는 장소가 사막이자 폐허라는 점은 이 둘의 사랑은 절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혹은 파시즘에 지배되던 당시, 젊은 남녀의 사랑이란 사막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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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호 평론가는 수강생들의 질문들을 받은 후에 강의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네오리얼리즘은 코뮤니즘(communism)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이러한 요소로 인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과 이탈리아는 보이지 않는 큰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하고 미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지닌 분이었기에 영화와 미술작품들을 연결시켜 분석해볼 수 있었던 점에서 매우 유익한 강의였다.


글: 모모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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