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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영화학교는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진지한 영화 감상과 영화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영화 강좌 프로그램입니다.

[2017 모모 영화학교] 다시 만난 세계: 뉴아메리칸시네마 3강) 마이클 치미노_환상의 아메리카

 

마이클 치미노환상의 아메리카

2017년 11월 9() l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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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어 헌터>의 한 장면

 

 

뉴 아메리칸 시네마 감독을 다루는 세번째 시간으로 김성욱 선생님께서 마이클 치미노에 대해 강의를 열어주셨다. 마이클 치미노가 활동했던 1970-80년대의 상황과 그에 따른 <디어 헌터>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보며,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천국의 문>까지 치미노가 쌓아온 뉴 아메리칸의 역사를 그려보았다.

 

l  1970년대의 뉴 아메리카

 많은 영화사가들은 1970년을 아메리카 황금시대의 마지막일 것이라 평가한다. 그것은 풍부하고 다양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표명하던 시대로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미국의 피터 쥐스킨트는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할리우드의 네가지 중요한 변화를 꼽는데 첫번째, 1970년대에 창조적인 감독들이 지배하던 시기에서 회사의 중역들, 변호사들이 지배하는 비즈니스 시대로 변모했다. 두번째, 영화가 제작 전부터 마케팅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컨셉 하에 진행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세번째, 상영 시스템의 큰 변화로서, 1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거대하게 공개되는 대신 첫 주에 관객을 들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는 상업적 시스템 안에 들어가게 된다. 네번째로 비디오 등의 다양한 관람 조건이 생겨나며 극장 관객층의 변모가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들의 결과로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할리우드엔 대중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영화들이 범람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 영화 산업과 사회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던 때에 뒤늦게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기운을 안고 승차한 치미노는 대단히 야심적인 감독이었다.

 

l  마이클 치미노와 <디어 헌터>의 성공

마이클 치미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화를 전공하진 않았다.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쓰던 중  클린트 이스우드를 만나 그의 눈에 띄어. <대도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스트우드와의 이같은 인연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데서 이어지기도 하는데, 여타 뉴 아메리칸 시네마 감독들이 미국적 이상주의를 거부하거나 비판한 반면 이들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드러내면서도 여전히 잊지 않고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베트남전쟁이 치미노를 사로잡는데, 미국 영화사에서 베트남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룬 감독은 70년대 중반까지도 없었다. 실패한 전쟁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상업적으로 성과있는 작업이 되기 어려웠고, 작가의 입장에서도 가까운 역사를 다루는 일은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미노는 현실의 문제, 미국의 이상주의 파괴와 관련해 동시대의 베트남 전쟁을 주목했고 가까스로 영국에서 투자 받아 <디어 헌터>를 완성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하고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하게 된다.

 

l  <디어 헌터>의 첫번째 특징 : 미국의 신화

 사실 <디어 헌터>에는 베트남 전쟁의 끔찍한 참상이 전혀 묘사되있지 않으며, 주요 이야기는 러시아 이민자 공동체에서 이루어진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존 포드와 하워드혹스의 영화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는데, 이는 에피소드의 유사성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의 풍경을 담은 방식, 미국에 대한 이상주의, 공동체에 대한 묘사 때문이다. <디어 헌터>는 당시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3,40년대의 작법을 응용해 구현했다. 이는 그의 영화를 만드는 동력이 무언가 착오적인 것을 믿음으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며, 이같은 치미노의 이상주의는 이미 폐기처분된 순수함을 재구축하고 그들의 절망, 소외감을 구현해 나간다는 점에서 동시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 감독들과 상당한 차이점을 가진다. 따라서 그는 시대에서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의 전통 신화를 이어 나간다.

 

 

l  <디어 헌터>의 두번째 특징 : 베트남 전쟁과 시대의 거울

 그럼에도 <디어 헌터>는 베트남 전쟁이 미국 영화의 본성 자체-‘우리는 무엇을 찍고 있는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사례로 꼽는다. 1970년대 이래로 실제의 현실과 텔레비전으로 보는 현실의 이중적인 상황이 놓여지자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서 영화는 이중 표상 작업을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거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갖는다.

전쟁의 패배와 참전군인의 고통이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에 환멸과 기대감의 상실을 불러 일으킨 때, 아메리카는 무엇이며 어떻게 재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염원이 모아져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디어 헌터>이다. 영화는 70년대 미국인이 갖는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총괄하는 작품인데, 이는 미국 영화가 국가적 아이덴티티에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지는 본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할리우드는 냉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소비에트의 반대편에 서부극을 놓아 끊임없이 우리는 누구인가를 정의해 나왔기 때문이다.

 

l  <디어 헌터>의 세번째 특징 : 홈무비

 재미있는 건 치미노가 <디어 헌터>를 만들고 나서 내 영화는 홈무비이다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예산이 너무 많이 쓰이는 블록버스터 홈무비라는 것이 아마 그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치미노에게 홈무비라는 건 이주자 공동체 등 집 단위의 규모가 주로 등장하면서, 또 근본적으로 집 자체가 부각이 되는 것이다. <디어 헌터> 속 주인공이 계속 집으로 가자고 할 때 이는 사실 미국 영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돌아갈 집이라는 주제는 공동체, 나아가 돌아갈 미국의 존재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또 제작적 측면에서도 홈무비의 특성을 띈다. 홈무비의 고유한 형식과 리듬-내러티브와 상관 없이 길게 전시되는 시퀀스는 그 안에서 무엇이 발생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게 하지만, 리듬을 읽어내는 순간 관객들이 인물들과 충분한 시간을 같이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그들의 감정을 충실히 읽어내게 한다. 이처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무엇이 흘러가는지를 보는 것이 치미노의 영화를 보는 어려움이자 즐거움이기도 하고, 그가 상업영화계에서 추방된 이유이기도 하다.

 

l  <디어 헌터>의 네번째 특징 : 블럭 구성

<디어 헌터>는 결혼식, 베트남전쟁, 장례식이라는 세 가지의 분명한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블럭 구성은 보통 건축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의 경우 그보다 하나의 섬처럼 찍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각 블럭들의 전환은 과정이 없이 진행된다. 이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동 경로를 배제함으로서 각 블럭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없애고 완전히 분리한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각 블럭의 공간-베트남과 펜실베니아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실 그리 멀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이 블록들은 모티브와 변주와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전통적인 할리우드 서사 체계와 다른 형식적 관계를 맺어 나감으로써 서로 공명하는 네트워크 구조의 이야기를 이뤄낸다.

 

l  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종결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라는 조건 안에서, 치미노는 <디어 헌터>의 성공에서 <천국의 문>의 실패까지 시적이면서 대중적으로 기능하는 영화의 가능성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두 편의 영화는 개인적인 상실을 다루지만 결국 미국의 비극과 공동체에 대한 환상과 그 해체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70년대 이상주의의 끝을 맺는다. 이같은 변모하는 세계를 직시하게 만드는 대단히 예외적인 작가로서 평가될 치미노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 직접적인 언어보다 하나의 시로서 체험적 측면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리. 이형주 모모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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