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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모모 영화학교] 다시 만난 세계: 뉴아메리칸시네마 4강) 샘 페킨파_폭력의 피카소, 그 잔혹과 우울의 연대

샘 페킨파: 폭력의 피카소, 그 잔혹과 우울의 연대

2017년 1116() l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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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 세계: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 네 번째 시간은 샘 페킨파 감독을 다루며 ‘폭력의 피카소, 그 잔혹과 우울의 연대’를 주제로 정한석 영화평론가의 강의가 이어졌다. 정한석 영화평론가는 본격적으로 강의를 이어가기 전 여러 한국 영화감독이 샘 페킨파에 대해 갖고 있는 취향에 대해 언급했다. 박찬욱 감독은 2010년 경 국내 한 매체에 자신의 올 타임 베스트를 언급하며 샘 페킨파 감독 작품 <가르시아(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1974년 作를 꼽았다. 평소에도 샘 페킨파 감독에 대한 애호를 여러 차례 밝혀 온 박찬욱 감독은 2006년 경 부산 시네마테크에서 진행된 샘 페킨파 회고전 당시, 근처에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촬영을 진행하다 스태프들에게 “내가 영화를 보러 가야 하니 빨리 좀 끝내자.”라는 표현으로 샘 페킨파에 대한 애정 어린 성화를 보이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 외에도 봉준호, 오승욱, 류승완, 이명세, 김성수 등 한국 대중영화의 중심적 추세를 이루고 있는 여러 한국 감독들이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할 때 샘 페킨파를 거론한다는 사실은 샘 페킨파라는 감독이 우리들로부터 그리 멀리 있는 감독이 아닐 수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샘 페킨파는 총 열네 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는데 그중 절반을 차지하는 일곱 편은 서부극의 정서를 띄고 있다. 일반적으로 샘 페킨파를 거론할 때 <겟어웨이(The Getaway)>, 1972년 作를 비롯한 그의 후반기 영화에 집중하지만 정한석 평론가는 샘 페킨파가 만든 일곱 편의 서부극에 주목하며 그 작품 속에 샘 페킨파의 영화적 면모, 그의 정수(精髓)가 담겨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의 서부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샘 페킨파 작품 세계에 다가가기 효과적인 접근법이라 여겼고 그중에서도 <대평원(Ride The Hide Country)>, 1962년 作,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 1969년 作,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The Ballad Of Cable Hogue)>, 1970년 作, <관계의 종말(Pat Garrett & Billy The Kid)>, 1973년 作 네 편의 서부극을 중심으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샘 페킨파 서부극의 영화사적 자리, “샘 페킨파의 서부극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샘 페킨파는 <데들리 컴퍼니온(The Deadly Companions)>으로 1961년에 장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지만 1962년에 발표한 <대평원>을 계기로 할리우드에서 실력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게 된다. 한편 같은 해 존 포드 감독은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로 서부극과 그 속의 인물들에 대한 종언(終言)이 담긴 작품을 발표한다. 이와 동시에 샘 페킨파는 <대평원>이라는 종전과 다른 서부극을 만들어내며 할리우드 내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새로운 형태의 생기를 부여한다. 이는 서부극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존 포드가 퇴장하는 순간에 샘 페킨파라는 신인 감독이 자신만의 서부극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며 후에 평단으로부터 “서부극의 마지막 공식 후계자”라는 칭호까지 이끌어낸다.


장르적 관점으로 샘 페킨파 서부극 들여다보기

2차 대전 전후 미국 영화, 특히 서부극 내의 인물들은 주로 어떤 일(임무)을 하기 위한 자신의 동기, 그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며 변질되는 경향을 보인다. 1940년대~1960년대에 주로 다뤄진 이 서부극을 통칭하여 ‘심리 웨스턴’이라 한다. 심리 웨스턴 내의 인물은 정전의 서부 인물과는 달리 신경질적, 공황적, 폐쇄적, 분열적 특질을 보이며 그러한 특질을 앞세워 공동체를 수호해내는 것이 심리 웨스턴의 핵심이다.

심리 웨스턴에 이어서 여기에 대응되는 또 다른 서부의 인물형이 등장하는데 이를 ‘전문가 웨스턴’이라 한다. 전문가 웨스턴 내의 인물은 더 이상 정의와 의협을 앞세워 일하지 않으며 공동체를 수호하는 행위에 대해 자신의 물리력을 돈으로 보상받는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접근한다.

샘 페킨파는 <대평원>을 통해 전문가 웨스턴의 한 플롯을 다루고 <와일드 번치>를 통해 전문가 웨스턴에서 벗어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후 <관계의 종말>에서는 전문가 웨스턴에 부합하는 인물과 그에 벗어난 인물을 동시에 다루며 전통적 서부극으로 출발하여 심리 웨스턴, 전문가 웨스턴까지 넘나드는 면모를 보여준다.


사회적 관점으로 샘 페킨파 서부극 들여다보기

1960년대~1970년대 미국 사회는 청년문화와 대항과 대안의 문화가 형성되며 1930년대 대공황 이후로 사회적 불만 지표가 가장 높았던 시기이다. 당시 베트남전, 워터게이트 사건 등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비운의 시기와 맞물려 뉴 할리우드 시네마가 형성됐는데 사회적 관점에서 샘 페킨파의 영화도 뉴 할리우드 시네마에 정확히 포함된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까지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약화되면서 서부라는 공간이 더 이상 신화적이고 극화된 공간이 아닌 굉장히 혐오스럽고 폭력적인 곳으로 묘사되며 나아가 역사적 리얼리즘의 장소로 재소환되기 시작한다.

이런 경향 속에서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전복되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으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샘 페킨파와 비슷한 시기에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년 作로 시작되는 ‘무법자 시리즈’를 내놓으며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하위 장르를 형성한다. 이후 코미디 영화로 유명한 멜 브룩스 감독은 <불타는 안장(Blazing Saddles)>, 1974년 作을 대표로 서부극이라는 장르 자체를 전복하고 풍자한다.

이후 배우 존 웨인의 유작인 <마지막 총잡이(The Shootist)>, 1976년 作로 대표되는 비가(悲歌, Elegy)적 성격의 서부극이 등장하는데 이런 비가적 성격을 전적으로 자신의 영화에서 플롯화, 시각화하며 나아가 장르화시킨 감독이 바로 샘 페킨파라고 할 수 있다.


<대평원>, <와일드 번치>, <케이블 호그 발라드>, <관계의 종말> 네 작품을 통해

샘 페킨파 서부극이 품은 비가(悲歌, Elegy)적 형식과 그 차이점 들여다보기

정한석 평론가는 각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라스트 시퀀스를 활용하여 샘 페킨파 서부극 내의 인물이 등장하는 방식과 퇴장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대평원>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은 기존의 서부극과는 달리 굉장히 초라하게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서부라는 공간과 그 속의 인물이 얼마나 초라해지고 기울어졌는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대평원>의 라스트 시퀀스 또한 일련의 과정을 극복해낸 주인공을 화려하게 비추며 마무리 짓는 기존의 서부극과 달리 전통으로부터 낙오되어 쓰러져 죽어가는 인물을 부각시킨다. 이는 전통적 서부극에서 취하는 인물이 풍경과 합치되어 퇴장하는 방식이 아닌 풍경으로부터 낙오된 도상성을 띠며 전통적 서부극과 완벽하게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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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좌측의 전통적 서부극 <셰인(Shane)>, 1953년 作의 경우 라스트 시퀀스에 이르러 인물이 풍경과 합치되며 화려하게 퇴장하지만 우측의 <대평원>은 풍경으로부터 낙오된 인물의 초상에 집중하는 도상성을 띠며 전통적 서부극과 완벽히 대립한다. 

 

1970년 작품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의 경우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주인공을 등장시킬 때 인물이 지닌 생존력에 대해 강조하며 이를 전문가 웨스턴 방식으로 접근한다. 일련의 과정이 지나간 이후 이어지는 라스트 시퀀스에서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과감한 생략으로 주인공을 퇴장시키는데 이 지점에서 <대평원>과 차이점이 드러난다. <대평원>에서는 전통적 방식과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협상을 하다 전통을 전복시키지만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에서는 인물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예고도 없이 인물을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아무런 협상 없이 전통적 방식을 전복시킨다.

세 번째 작품은 <와일드 번치>로 샘 페킨파는 이 영화에 대해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악인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샘 페킨파는 <와일드 번치>의 라스트 시퀀스 하나만으로 ‘폭력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지만 <와일드 번치>에 대해 단순히 폭력적이라고 단언할 영화가 아니라 생각하는 미국의 여러 평론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샘 페킨파에 대해 ‘피의 시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와일드 번치>에 대해 “이 영화는 총알에 대한 영화가 아닌 발레(춤)에 대한 영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샘 페킨파는 <와일드 번치>를 통해 폭력에 관한 모종의 페티시즘과 스펙타클을 자극했는데 이는 영화 내에서 의도적으로 폭력을 과장하고 과잉하는 요설(饒舌)로 작용해 자기 파괴적 액션의 미쟝센을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다룬 <관계의 종말>은 전통적 서부극의 특질인 서부적 신화, 우정의 연대에 기반을 둔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서부극 방식에서는 벗어난 영화라는 특이점이 있다. <관계의 종말>의 오프닝 시퀀스는 과거와 미래를 뒤섞은 교차 편집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편집 방식을 통해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죽음의 순환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관계의 종말> 라스트 시퀀스를 보면 도상적으로는 전통적 서부극의 도상을 반복하지만 그 정조는 기존의 서부극을 철저히 비껴가고 있는 샘 페킨파의 기민한 접근이 돋보인다. 정한석 평론가는 <관계의 종말>에 대해 “서부 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서부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 영화.”라 평하며 기존 서부극과 큰 차이를 지닌 샘 페킨파의 서부극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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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우측의 <관계의 종말>은 좌측의 전통적 서부극 <셰인>의 도상성을 그대로 반복하지만 그 장면 속의 정조는 기존의 서부극을 철저히 비껴가고 있다.


샘 페킨파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기

흔히 샘 페킨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지겨울 정도로 서부극이다.”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한석 평론가는 샘 페킨파의 많은 작품 중 <와일드 번치>에 드러난 폭력성이라는 한 단면만 부각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오히려 샘 페킨파 서부극에 담긴 비가적 정서에 집중하여 그를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관계의 종말> 속 빌리와 펫이 주고받은 대사를 인용했다.


<관계의 종말> 中,

빌리

펫, 요즘 어떻게 지내?

(잠시 망설인 후) 내 느낌에는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빌리

변한 건 세상이지. 내가 아니잖아.


정한석 평론가는 이 대사에 대해 “다소 시대착오적 대화로 느낄 수 있지만 세상이 변하더라도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는 억척스러움이 드러나는, 서부극의 마지막 주자로서 샘 페킨파 지닌 세계감(世界感, 세계를 느끼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대사라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샘 페킨파를 단순히 폭력의 감독이라 단언하기보다는 차이를 기반 삼아 활동한 입체적 감독이자, 그 입체성을 통해서 비가적 형식을 표현한 감독이라 평하며 “샘 페킨파의 세계관(눈과 시점)이 아닌 그의 세계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제안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정리. 김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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