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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영화, 영화를 바꾼 세상 5강) 필름 파탈: 욕망하는 여자들의 치명적인 영화들

필름 파탈: 욕망하는 여자들의 치명적인 영화들

손희정 문화평론가 

 

영화 속에서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 오랜 시간 페미니스트의 비판 대상인 팜므파탈이라는 용어를 전유한 강의의 제목 ‘필름 파탈’1). 손희정 평론가는 페미니즘 영화이론을 통해 대중 서사 안에서 여성의 성장 가능성과 새로운 해석방식에 대해서 논리적이고 명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의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왜 대중 서사 속에서 남성만이 성장한다고 상상되는가?”그렇다. 대부분의 서사 속에서 여성은 부수적이며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 예컨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속 진정한 주인공은 타이틀롤인 ‘미녀’가 아니고 미녀를 취하러 가는 남성인 것이다. 이러한 서사 속에서의 상상은 현실을 조건 짓고, 이 현실은 또 다시 남성 중심적 상상을 재현해내는 악습으로 이어진다. 관련하여 클레어 존스톤은 “남자는 역사적인 존재로 상상될 때 여성은 초역사적 존재로 상상된다”라고 말한다. 시간 속 이야기 즉 역사는 남성의 것이 되고 여성은 가부장제 편견과 돌봄 노동에 기반을 둔 어머니 혹은 창녀의 이미지로 밖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매체 속 성장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신화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인간서사와 상징의 보편적 구조라 주장하였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욕망의 덩어리 그 자체인지라 자신만을 보호해주는 어머니를 향해 성적 욕망이 발현되고, 훈육을 통해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또한 아이는 어머니 옆 아버지에 대한 공포로 법과 정치를 순응하게 되고 페니스를 권력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때 여성으로서 어머니에게는 페니스가 부재하기에 결핍된 자아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자신 역시 권력을 상실할 수 있는 거세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 내에서 권력을 보장하는 기구인 페니스를 획득하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거두고 하찮은 존재로 격하하며 아버지가 지배하는 ‘팔루스’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사회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가설은 가부장적 상상력의 흥미로운 상징일 뿐이지만 남성의 권위를 강조하고 여성혐오 신화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시네페미니스트 로라멀비는 라캉과 프로이트의 이론을 기반으로 1975년 <시각적 쾌락과 서사영화>를 발표한다. 이 에세이에서 그녀는 고전 서사영화 내에서의 시각적 쾌락을 분석하며 여성이 보이는 대상이라는 것을 넘어 볼거리로 위치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무의식이 시각매체의 형식과 구성을 결정한다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 손희정 평론가는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작품 <비뚤어진 시선>을 제시한다. 사진 속 여성이 작품의 중심일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시선이 모든 것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매체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여성이 주인공일 경우라도 남성이 서사의 주체가 되고 여성을 물신적 대상으로 치환하여 볼거리로 구성한다. 다수의 헐리우드 고전영화는 ‘카메라의 시선’과 ‘영화 속 남성 캐릭터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동일시하도록 의도하여 남성 서사의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멀비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카메라의 시선이 스크린 내부에서 실체성을 얻어야 하며 관객의 시선이 변증법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기 위하여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는데, 피터 울렌과 공동 연출한 아방가르드 영화<스핑크스의 수수께께>가 바로 그것이다.

 

<시각적 쾌락과 서사영화> 속 논의는 일차적으로 영화를 경유하여 '성'에 대한 주체적인 전복을 촉구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모든 여성(혹은 남성)이 동일한 주체로 상정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또한 여성성과 관련하여 영화 감상에 있어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역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테레사 드 로레티스는 여성 관객이 이중적으로 욕망하는 위치를 가지며, 남성관객과 대비하여 유연한 동일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하여 여성은 양성적으로 위치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위치의 변화가 여성의 수수께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국 여성 관객은 이중적으로 욕망하는 관객이다. 다른 이들을 향한 욕망이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에 의해 욕망되고자 하는 욕망인 것이다.

 

 로레티스는 여성적 오이디푸스의 궤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2)를 예시로 설명하였다. 영화 속 주인공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맥심 드 윈터에 대한 욕망과 함께 그의 죽은 전처인 레베카에 대한 욕망을 함께 보여준다. 로레티스가 ‘오이디푸스에 의해 영화가 작동한다’라고 설명했듯, 여주인공은 남성의 편에 서서 여성을 위한 욕망을 소거한다. 즉 레베카(어머니)를 없애고 아버지로 상징되는 맥심 드 윈터와의 사랑을 이루면서 끝을 맺는 것이다. 레베카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고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하면서 아버지로 욕망의 대상을 옮겨간 주인공 ‘나’와 여성 관객은 강제적 합의를 통해 여성성으로 유도된다. 레즈비언 욕망을 다룬 로레티스의 이론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사이의 소통을 예시하면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응시와 시각적 쾌락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강의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바바라 크리드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남성 중심성을 비판하며 “왜 여성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가.” 논증한다. 크리드는 가부장제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또 하나의 경향으로써 “여성괴물”영화를 제시한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가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이야기하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구마사제3)와 편모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녀 리건. 빙의가 된 리건의 비체적 이미지는 모성적 지휘권의 억눌린 세계를 환기한다. 카펫위에 소변을 보고 녹색 담즙을 뱉어내는 리건은 부계 상징계의 이성적 질서를 혼란에 빠트리고 원초적 욕망으로 회귀를 희망하는 주이상스적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론은 성차와 젠더의 개념을 분리하고 사회가 남성성 여성성을 결정해 생물학적인 젠더를 만들어냈다는 점을 영화에 적용했다는 의의가 있다. 특히 괴물스러운 여성성이 드러나는 공포영화 장르를 통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영향력 있는 분석을 보여준다.

 

손희정 평론가의 강의는 로라 멀비, 테레사 드 로레티스 그리고 바바라 크리드의 논의를 통해 ‘아버지’의 규범을 전복한 여성 캐릭터들의 상상력과 가능성에 대해서 폭넓게 들려주었다. 또한 여성의 주체적 시선에 대한 비젼과 미션, 씨네페미니즘 이론과 여성주의적 비평에 대한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측면에서 시의성 있는 담론이 풍성한 강의였다.

 

1) 필름 파탈은 1990년대 미국에서 출판된 여성독립영화감독에 대한 도서명이기도 하다. 

2) 줄거리: 평범하고 수줍음 잘 타는 그녀는 몬테 카를로에서 몇 년 전 아내 레베카와 사별한 부유한 신사 맥심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아직도 전처를 잃은 슬픔에 다소 불안정한 심리 상태의 맥심과 결혼 후 그의 대저택 '맨덜리'에 입성한다.  아름답지만 음산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저택 ‘맨덜리’는 죽은 레베카가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레베카에게 깊게 물들어 있다.  집사 댄버스 부인마저 시종일관 무표정함을 유지하며 경계심을 드러내 그녀를 신경쇠약 상태로 몰아간다.  하지만 남편 맥심은 자신의 심적 고통 때문에 미처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그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어느 비바람 몰아치던 저녁, ‘맨덜리’ 저택의 비밀이 드러날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3) 신부는 영어로 ‘Father’이기도 하다. 

 

정리. 신효진 모모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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