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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양성평등을 위해 투쟁하다

 

[모모 큐레이터’S PICK]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글: 모모 큐레이터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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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1933년에 태어나 한국 나이 87세로 1993년 대법관에 임명되어 35년 넘게 재직 중이다. 그녀 앞에 붙은 가장 큰 수식어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자, 최초의 유대인계 여성 연방대법관'이다. 첫 번째도 아닌 두 번째가 그리 중요한가?

 

두 번째가 있으면 첫 번째가 있는 법,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은 샌드라 데이 오코너이다. 1981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어 2006년까지 재직하였다. 그녀는 중도보수 성향으로 전형적인 균형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반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최초엔 중도진보 성향에 있었다가 부시 대통령 때 강경보수가 들어오자 강경진보 성향으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오면서 행했던 수많은 소송들의 성향을 비추어볼 때 진보적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간략히나마 그녀의 삶을 돌아본다. 그녀의 삶은 곧 투쟁이었고, 그 투쟁은 법을 향한다.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해, 아니 양성평등을 위해 평생을 투쟁한 삶이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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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분노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 긴즈버그, 코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간다. 하지만 뉴욕 로펌에서 일하게 된 남편을 따라 이사를 하게 되어 컬럼비아 로스쿨에 편입해 학위를 딴다. 

 

그녀의 남편 바티는, 그녀의 말마따나 '여자에게도 뇌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준 남자인데 평생 긴즈버그를 서포트했다고 한다. 긴즈버그는 평생 최고의 행운이 바티와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1950~60년대라는 점을 상기시켜봐야 하겠다. 

 

1963년 럿거스 로스쿨 교수가 된 그녀,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미국 자유인권협회 법무자문위원,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 미국 연방상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며 명성을 떨친다. 

 

변호사로도 일했던 1970년대 그녀가 맡았던 남녀평등 관련 소송건들은 크나큰 족적을 남겼는데, 이미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는 남자와 여자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는 와중에도 혼자가 된 아버지가 자식을 키우고자 했을 때 양육수당을 줄 수 없다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맡는 등 전략적인 행보도 보였다. 그야말로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의 소유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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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법적 금지로 되기까지

 

긴즈버그의 행보는 대법관이 되고 나서도 계속된다. 진보 성향이기 때문에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판결한 소송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양성평등과 소수자 차별 금지를 중심에 두고 수없이 자주 '나는 반대한다'를 외쳤다. 

 

대법관이라 하면 이미 일개 개인이 아닌 한 나라를 이끄는 삼권(입법, 사법, 행정) 중 사법권 그자체와 다름 없기 때문에, 오직 헌법에 기초해 판결을 내려야 한다. 거기에 어떤 개인적 신념과 정치적 성향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긴즈버그는 어떠했을까. 혹자는 정치적 성향은 몰라도 개인적 신념이 다분히 스며든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 덕분에 미국 법은 일찍이 1970년대에 성차별을 법적으로 금지시키게 되었다. 물론 현재까지도 다양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퍼져 있는 온갖 차별들을 계속해서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지만 말이다. 

 

즉, 그녀의 개인적 신념은 더 이상 개인적 신념이 아닌 법적 조항이 된 것이다. 그녀로부터 시작해 모두가 받아들이게 된. 세상을 바꾼 사람이 많다지만, 이토록 점진적이고 철두철미하게 전략적으로 바꾼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보다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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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것들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긴즈버그의 남편 바티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조차 없겠지만, 누군가는 강력한 진보 성향으로 양성평등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있지만 정작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긴즈버그 같은 대단한 사람도 여자 혼자로선 해낼 수 없었기에 남편 바티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게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남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결국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거창하지 않은 사소한 실천들 말이다. 

 

긴즈버그는 그야말로 대단한 일을 해왔다. 법으로서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차원의 투쟁을 해왔고 이겼고 바꿨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들은 너무 많다. 인식은 바꿀 수 있다지만, 행동은 바뀌기 쉽지 않다. 행동을 바꾸려면 긴즈버그의 방식 아닌 다른 방식도 병행되어야 한다. 시위 등을 통한 직접적 목소리와 행동을 내는 것 말이다. 

 

행동을 바꾸려면, 행동이 주가 되는 방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성공한 여성의 스토리가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와 결을 같이하는 또 다른 영화들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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