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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러브리스>

사랑 없는 세상에서 찾는 사랑 그 자체로 충만한 사랑

 

[모모 큐레이터'S PICK] <러브리스>

글: 모모 큐레이터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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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영화제가 사랑하는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안긴체프, 2003년 장편영화 데뷔작 <리턴>으로 베니스를 석권하며 국내에 개봉되기까지 했다. 이후 2편은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고 2014년작 <리바이어던>으로 다시금 소개되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진정한 거장으로 거듭났다는 평이다. 그리고 2017년 <러브리스>로 다시금 거장의 면모를 선보였다. 우리나라엔 2년 만에 소개되었다. 

 

안드레이 즈비안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 소식은 일찌감치 들어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정식으로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통에 보지 못할 줄 알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차 <러브리스> 개봉 소식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말할 수 있겠다. 국내 예술영화 시장이 아직은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반증이랄까. 

 

가깝지만 먼 나라 러시아의 영화를 접하기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할리우드의 유수 영화들이야 러시아와 우리나라가 공유하겠지만 왠만한 러시아 영화들을 우리나라가 공유하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일 듯. 와중에 예술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다양한 외국 영화들이 소개될 수 있다는 건, 영화가 갖는 상업적 속성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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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진행 중 부부와 가출한 아이

 

영화는 눈 쌓인 삭막한 숲 속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숲 속이 아니다. 이어 역시 삭막해 보이는 학교의 전경에서, 수업이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학생 중에 12살 남자아이 알로샤의 모습이 보인다. 소년은 숲 속을 지나 집으로 간다. 집에는 엄마 제냐가 있다. 그녀는 알로샤가 진절머리 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남편 보리스와 이혼을 진행 중이다. 

 

제냐와 보리스는 만날 때마다 싸운다. 서로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다. 특히 제냐는 보리스를 사랑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아이를 갖고 결혼하여 13년을 지내왔다는, 그래서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알로샤는 어느 날 저녁 그 얘기를 듣고 정말에 차서 울다 잠이 든다. 자신이 아빠와 엄마의 사랑의 결실은커녕 불행의 씨앗이었다니. 다음 날 아침 알로샤는 집을 튀쳐나가다시피 한다. 학교에 간 것인지?

 

제냐와 보리스는 알로샤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각자의 '사랑'을 키우는 중이다. 보리스는 이미 그 사랑과 아이까지 가진 상태이다. 이틀 후, 알로샤가 이틀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는 제냐와 보리스는 알로샤를 찾아 나선다. 곧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시작하지만, 담당 경찰의 말마따라 제대로 된 조사와 수색을 기대할 수 없다. 

 

경찰은 수색구조팀에 연락해 보라고 한다. 그들은 자원봉사자 집단으로, 정부에서 하는 일이 아니기에 관료주의도 없고 24시간 무료라고 전해준다. 제냐와 보리스는 수색구조팀과 함께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알로샤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쉽지 않은 듯하다. 문제는, 제냐와 보리스가 진실로 알로샤를 찾을 마음이 있는가이다. 그들의 말과 표정과 행동을 보면 의무감으로 하는 것 같다. 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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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이야기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영화 <러브리스>는 별거 아닌 소재와 고급스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소재와 구조가 이원화 아닌 일원화되어 있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부, 걸림돌이라 생각하는 아들의 가출'이 곧 소재이자 구조인 것이다. '별거 아닌' 이유는 요즘 시대에 이혼과 가출이 큰 일이 아니라는 점이고, '고급스러운' 이유는 별거 아닌 소재 두 개를 투 트렉으로 사회 나아가 시대까지 조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목이 직설적이다. 'Loveless', 사랑이 없다는 뜻이다. 이혼을 앞둔 부부는 물론, 부부가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부부가 각각의 새로운 상대와 함께 그들의 부모를 대하는 태도에서 사랑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제냐와 보리스가 각자의 새로운 '사랑'을 키우는 상대와도 결국은 어떤 결말을 겪을지 상상이 간다.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알로샤가 집에 돌아올 것 같지도 않다. 

 

이혼과 가출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때 먼저 드는 생각이 씁쓸함이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하는 도의적 생각의 연장. 곧바로 수긍이 가면서 공허함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운다. 결국은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시대적 조류와 인간적 본능의 결합 이후, 사랑을 사랑으로 채우는 불합리성의 역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곤 제냐와 보리스로 상징되는 당사자들이 아닌 알로샤로 상징되는 '피해자'를 향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알로샤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태어나게 한 사람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며 존재까지 부정당해야 하는가. 

 

이 감정의 흐름은, 영화를 보면서 드는 감정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분명 러시아라는 한정된 나라 안 한정된 지역의 한 부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그건 인종과 나라와 지역과 나이를 막론하고 이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느낄 만한 감정이다. 한정에서 보편으로 이르는 흐름 또한 이 영화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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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자체로 충만한 사랑에의 희망

 

사랑과 행복과 희망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희망은 자원봉사자 집단 수색구조팀이다. 영화는 경찰의 입을 통해 간략하게 설명해줄 뿐, 사실상 그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전해주지 않는다. 그건 극 중 그들이 행하는 무조건적인 자원봉사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하겠는데, 이는 곧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 없는 이 시대의 해법이 아닌가 싶다. 

 

사랑으로 대체하는 사랑, 후회하는 사랑, 조건 있는 사랑 등 이 시대를 지탱하는 사랑의 방식은, 여러 유형이 있고 선택의 여지가 많으며 보다 개인의 삶에 나은 쪽으로 발전해가는 것 같다. 그래서 굉장히 민주주의적이고 '좋은' 쪽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 그 자체로 충만한 사랑 말이다. 다른 무엇도, 어떤 수식어도 불필요한 사랑. 

 

말이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러브리스>는 그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전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집단 수색구조팀의 무료, 무조건적인 활동이라는 소재로 특이하다면 특이하게, 고급스럽다면 고급스럽게 말이다. 수시로 생각해본다. 나와 아내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게 아니면 무엇일까. 이게 '사랑'이라는 것인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지금은 사랑을 하더라도 나중엔 사랑을 하지 않게 될까. 사랑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을까. 꼭 사랑을 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그야말로 중구난방 횡설수설,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이렇게 되고 마는 것 같다. <러브리스>가 보여주는 이 시대의 사랑과 행복과 희망, 그 단면은 결코 전부라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편적으로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이 많아지며 눈썹을 지푸리고 있다면, 결코 단면일 뿐이라고 안심할 순 없다. 우린 사랑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맞다. 사랑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영화 한 편을 추천해주시길 바란다. 단,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 사랑 이야기로. 

 

 

사진 출처: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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