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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판의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독재와 불복종의 잔혹한 이야기 

 

 

[모모 큐레이터'S PICK]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글: 모모 큐레이터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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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의 최고작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상 '판의 미로')가 13년 만에 재개봉했다. 2006년 국내 개봉 당시, '기이한 판타지'라는 단어를 앞세워 어른들 아닌 아이들을 공략하는 오판 마케팅으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었다. 영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판의 미로>가 21세기 최고의 판타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는 걸 알겠지만 그러하기에 황당하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잘 모르고 봤던 이들은, 이 영화가 주는 여러 가지 의미의 잔혹성에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돌리고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재개봉하면서 '잔혹'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13년 전 그때 그 배급사는 잔혹함을 내세우면 관객들이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판단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판의 미로>가 갖는 급이 다른 영향력과 작품성과 연출력과 풍부함을 알기에 한편으론 익숙하게 한편으론 새롭게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재개봉작들이 과거 큰 흥행과 파급력을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시금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는 것에서 진정한 의미의 재개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사이 21세기 최고의 감독 중 하나라 불러도 손색없는 커리어를 쌓았다. 재작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쥐었으며 베니스에서도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역시 오스카를 평정한 알폰소 쿠아론과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와 더불어 멕시코 출신 영화감독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그(3명이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2017년을 제외하고 오스카 감독상을 독식했다)의 자타공인 최고작이니만큼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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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의 세 가지 과제와 스페인 내전의 연장 전투

먼 옛날 지하왕국, 행복과 평화로 가득 찬 그곳에 인간 세계를 동경하는 공주가 있었다. 햇빛과 하늘과 바람을 꿈꾸던 공주는 지상의 인간 세계로 도망친다. 하지만 너무나 눈부신 햇살에 공주는 눈이 멀고 기억을 잃은 채로 죽고 만다. 1944년 스페인,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지만 반란군은 산속에서 여전히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반란군 소탕을 위해 산밑으로 군대를 파견한다. 그곳은 비달 대위가 이끌고 있고, 어린 소녀 오필리아는 임신한 엄마와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도중에 요정을 만나는 오필리아, 산밑 주둔지 침소에 찾아든 요정을 따라 산속 신비의 세계로 진입한다. 현실의 반란군이 있기도 한 그곳에서 숲의 요정 판을 만나 그에게서, 자신이 원래 지하 세계 공주 모안나이며 지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보름달이 뜨기 전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판의 말을 굳건히 믿고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이어간다. 

한편, 산밑에서 비달 대위가 이끄는 정부군은 산속의 반란군과 계속해 대치하면서 잔인한 짓을 일삼는다. 무고한 이를 죽이고, 반란군 포로를 고문하며,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난 후 확인사살도 잇지 않는다. 비달 대위는 사실 오필리아는 물론 아내가 된 카르멘도 안중에 없다. 그에겐 오직 카르멘의 뱃속에 있는 아들(아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만 있을 뿐이다. 

영화는 오필리아와 판을 필두로 하는 환상 세계와 비달 대위를 필두로 하는 현실 세계를 자연스레 오간다. 두 세계는 엄연히 다른 곳에 있는 듯하지만, 비단 산속과 산밑이라는 절대적 공간만 다를 뿐인 듯도 하다. 더불어 오필리아의 하염없이 한가해 보이는 듯한 세 가지 과제 수행기와 두 집단의 피비린내 나는 대치 사이가 굉장히 큰 차이와 간격이 있어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여러 맥락들의 일치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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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맥락들엔 아무래도 오필리아와 비달 대위가 있을 것이다. 이 두 인물은 단순히 인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닌 투철한 상징성을 획득해 환상과 현실에서 활약한다. 오필리아는 현실의 비달 대위라는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상을 택했고, 진정한 환상의 세계로 즉 모안나 공주로서 지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무모한 환상과 어두운 욕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오필리아가 보고 듣고 행하는 환상의 세계란 것이 오직 그녀에게만 보이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무모한 환상인지, 그 환상에의 여정에 우리도 동참해 지친 심신을 희한하게 위로받고 있는 게 아닌지. 그런가 하면, 비달 대위는 단순히 정부군 소속의 투철한 군인으로서만 비춰지지 않는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군이자 지배자로, 오필리아나 카르멘이 위협을 느낄 만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신념을 넘어선 뒤틀리고 어두운 욕망 덩어리가 아닌가.  

영화는 미장센보다 몽타주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으로 정통하게 접근했다고 볼 수 있겠다. 환상의 세계를 신화적 요소들로 채워넣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이 시대 새로운 고전이자 신화를 쓰고자 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20세기 최악의 사건은 충분히 신화의 요건을 갖췄거니와, 그 후과는 신화의 소재로 쓰일 만한 자질(?)을 갖췄다.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불가능하게 종과 횡으로 복잡다단하게 비극적인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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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와 불복종의 신념

스페인 내전으로 프랑코는 정권을 장악해 1970년대까지 독재를 계속한다. 영화 속 비달 대위는 프랑코 정권 독재의 현현(顯現)이다. 프랑코가 정권을 장악하게 도와준 이들이 다름 아닌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비롯 파시스트들이었기에, 넓은 의미로 독재 그 자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프랑코가 정권을 탈취한 이들은 좌익연합인 인민전선 내각으로,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다방면의 이슈가 생겨나고 말았기에 영화에서는 정부군과 대치하는 반란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로 그친다.  

영화에서 반란군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대신하는 이가 오필리아이다. 그리고 오필리아는 다시 그 역할을 한 번 더 대신하여 현실 아닌 환상의 세계에서 수행한다. 이 영화가 대단한 점, 연출과 각본과 제작을 맡은 기예르모 델 토로가 대단한 점은 이 지점이다. 오필리아가 반란군의 역할을 우회하고 우회해서 수행하는 게 세 가지 과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과제를 실패하면서 그 역할이 이루어진다. 물론 오필리아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불복종의 신념을 지켜나간 것이었다.  

한편, 불복종의 신념은 현실에서 투철한 스파이들에 의해서도 지켜진다. 독재 지배에 맞서는 방법은 오직 불복종일 뿐이다. 독재에 독재로 맞서서는 안 되는 것이고, 독재에 테러와 전쟁으로 맞서는 건 한계가 있을 뿐더러 또 다른 독재를 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고, 독재에 평화로 맞서는 건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볼복종에 이은 희생, 그 굴하지 않는 끝없는 신념에의 무모함이 궁극적으로 독재를 물리칠 방법이다.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독재라는 초유의 사태에 맞서기 위해서 수행해야 할 일이겠다.  

영화가 수많은 비극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와중에도 빛을 잃지 않는 희망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독재자 비달 대위는 죽고 오필리아는 세 가지 과제를 모두 수행하여 지하 세계로 돌아가는 스토리일 것이다. 문제는, 신화란 그렇게 단면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비달 대위는 죽겠지만, 오필리아는 과연? 그녀가 다른 이유 아닌 비달 대위에게 죽는다고 상상해보자. 적어도 맥락을 아는 관객들에겐 불복종의 신념을 지키다가 독재자의 손에 죽은 어린 순교자가 아니겠는가. 기예르모가 그것까지 노렸다면, 그는 천재가 확실하다. 어떤 결말일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사진 출처: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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