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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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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영화, 영화를 바꾼 세상 2강) 시대의 변화와 리얼리즘의 정신 - 루마니아 뉴웨이브

시대의 변화와 리얼리즘의 정신 - 루마니아 뉴웨이브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라자레스크씨의 죽음],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4개월 3주... 그리고 2일]. 2000년 중반 전 세계적으로 영화 소사이어티에서는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를 색다른 영화로 받아들였다.   

 

현재 루마니아 영화가 어떠한 힘이 있다고는 답하기 어렵지만, 이제는 중견감독이 된 크리스티안 문주 등의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여 유사한 상태에서 조건이 달라지고 있는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는 성찰적으로 한 시대를 담아내고. 인위적인 표현방식을 덜어내어 표현하는데, 이러한 기조에서 뉴웨이브 영화의 카메라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고 이상용 평론가는 말한다.

 

뉴웨이브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다. 전후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 문학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문학에서는 사무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가 세계대전 이후의 표현법으로 주목받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도는 결국 오지 않는다.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도 이러한 표현법의 연장 선상에서 끝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고 있다. 영화는 어떠한 전망이나 희망을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국가 권력 시스템 하에있는 사회적 약자들. 그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 그리고 [라자레스크씨의 죽음] 두 영화를 통해 루마니아가 시대를 어떻게 담는지,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흐름이 어떠한지 제시한다.

 

크리스티안 문주와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대부분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들은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모든 부패들이 밀려오고 관료화된 사회는 고착되어간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통제 하에 프로파간다 영화들이 제작되어왔다. 그러나 89년도 루마니아 혁명을 기점으로 90년대부터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국가검열보다 무서운 자기검열을 넘어서 국제영화제에서 부각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 크리스티안 문주가 있다.

 

크리스티안 문주는 2002년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로 데뷔하였다. 제목에서부터 옥시덴탈리즘이 느껴지는 이 영화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 블랙코미디 적 요소를 더 가미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영화부터 크리스티안 문주는 영화를 통해 루마니아의 사회를 적나라하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행보를 보여 왔다. 

 

낙태를 하기 위해 호텔을 예약해야 하고 암암리에 의사를 고용해 해야 하는 상황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1987년 차우셰스크 가장 극악했던 마지막 정권시기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낙태는 금지되었고, 물건 수급이 어려워 학교 기숙사에서 물건이 오고 가는 암시장이 형성되었다. 문주는 암담한 사회 경제적인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고, 인물의 상황과 대화로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낙태 하는 가비타(로라 바실리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그녀의 친구 오틸리아(아나마리아 마린차)의 시점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녀는 반나절 동안 친구의 낙태를 도와주고, 남자친구 어머니의 생신잔치에 방문해야 하는 두 가지 임무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끈다. 

 

사회적 현실을 끌고 보여주는 오틸리아와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 속에서 사회적 코멘터리를 가하는데, 롱 테이크 기법과 다르덴이 주로 선보였던 인물의 뒤를 따라가는 촬영기법을 활용한다. 이로 인해 카메라는 인물과 매우 가깝고 공간이 한정적으로 사용된다. 호텔이라는 제약된 공간과 압축된 시간 속에서 남성본위적인 정치 상황과 열악한 여성정책 그리고 생명에 대한 윤리문제를 이야기한다. 반나절의 시간을 디테일하게 보았음에도 시간을 압축하는 세련된 기법으로 몰입도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제한된 공간과 압축된 시간 속의 이야기. 친구를 위해 낙태의사의 성관계 요구를 받아들여하는 상황. 문주는 여성의 폭압적인 상황에서 방치되는 상황을 섹슈얼하고 자극적인 부분을 덜어내어 제시한다. 그러나 죽은 태아만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왜 이렇게까지 전시하였을까. 이상용 평론가는 여성들보다 더 약자인 생명이 고깃덩어리처럼 보여 지는 장면을 통해 푸코의 생명정치에서 드러난 철학적 관점이 드러난다고 역설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폭압적인 상황 속에서 버려지는 상황 그리고 누구도 그 생명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그려내며, 인본주의적인 차원에서 생명이 버려지고 있는 차라셰스크 정권의 문제적 현실을 과감히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오틸리아가 남자친구한테 던지는 질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임신했으면 어쩔거야?” 이 낙태문제는 가비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닥칠 수 있다는 문제 인식. 그 폭력적인 상황 속에 루마니아 여성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오틸리아는 자신을 유일하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가비타라고 말하며 여성적인 연대, 소수자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떠한 희망이나 전망이 드러나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나고 만다.

 

네오리얼리즘

 

네오리얼리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셀리니 [무방비 도시]를 기점으로 40년대 이탈리아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네오리얼리즘은 인공적인 조명보다는 자연광, 현장감을 주는 연출방식을 택한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도 마찬가지로 시간적 배경이 밤임에도 날 것 그대로의 인상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컬러 영화이지만 흑백 영화 같은 느낌. 대단히 칙칙하고 어두운 톤 자체를 유지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은 물론 루마니아 스타로 성장한 배우들이지만 당시 아마추어 적인 배우들이었고, 실제로 아마추어 연기자를 적극 활용하면서 현실적인 감각을 살린다. 루마니아 영화들은 이렇게 과거를 환상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그렇게 멀지 않은 이야기들을 내뱉고 있다. 

 

루마니아의 밤

 

네오리얼리즘은 당시 열악한 상황들을 그려내며 주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하는데, 따라서 주인공들은 대개 여성-노인-아이이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크리스티 푸이유 作 [라자레스크씨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인 병든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차우셰스크 정권 이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모두 순조롭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상황은 문주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인 부패, 심각한 의료체계, 책임회피의 문제들이 여실히 등장한다. 

 

뉴웨이브의 컨셉은 복잡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대개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이란 뉴웨이브 영화와 같이 짧은 시간 속에서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학교 교육시스템이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주제로 가공된 현실을 연출한다. 

 

크리스티 푸이유의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병에 걸린 노인이 구급차를 타고 수술병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구급차는 영화가 시작한 지 35분 만에 도착하고, 5차례나 수술 병동을 옮긴다는 것이다. 주변 인물들은 노인에게 큰 우려를 표하지 않고 헛바퀴 돌 듯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답답하고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루마니아의 의료현실을 목격한다. 그리고 책임을 지려는 사람 & 관심이 있어야 할 핵심인물들이 부재한다. 주변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크리스티안 문주의 영화에서 가비타의 남자친구가 등장하지 않은 것처럼 이웃들만이 존재한 채 가족들은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회가 방조 되는 것은  책임지는 것에 대한 공포, 부재로부터 뻗어 나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책임지는 인물과 상황의 부재를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윤리,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뉴웨이브 영화들이 암담한 현실에서 허덕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품 비토리오 데 시카 作 [자전거 도둑]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을 돕는 비현실적인 인물과 상황이 그려지기도 한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오필리아와  후반부에 등장하여 길을 알려주는 한 사내, [라자레스크씨의 죽음]의 구급대원이 이에 해당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숨 쉴 틈 구멍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이 인물들은 화자가 되어 주인공 대신 영화를 이끌어 가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 나쁜 모습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두 영화는 많은 부분 닮아있다. 먼저 두 영화 모두 밤의 시간으로 향한다. 밤의 시간이란 무엇인가. 상징적인 설명은 건너뛰고, 네오 리얼리즘 특유의 영화적 표현의 조건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밤이라는 시간대는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폐쇄적인 공간의 한계를 잘 표현해주고 영화들이 갖고 있는 주제와 이슈와 결부되어 풍부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밤에는 낮에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시스템이 열악하게 운용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한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의료체계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끝나지 않는 엔딩’, 어쩌면 끝낼 수 없는 결말이 더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는 대개 그 현실을 특정한 결과로 단정 짓지 않는다. 마지막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가가는 카메라의 존재이다. 실재와 가상을 넘나드는 다큐멘터리 표현 방식으로 당시 시대상을 담아내고 있다.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의 흐름은 비단 영화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상용 평론가는 고야의 작품 <아들을 삼키는 사트루누스>와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드러난 블랙 페인팅을 비교하며 예술도 일종의 계보를 이어간다고 설명한다. 즉 피카소 같은 예술가 또한 고야의 사 시대성이 드러나는 블랙 페인팅을 재해석해 게르니카를 완성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전후 시대상황 속에서 등장하였고 부분적으로 2000년대 초반에 루마니아영화로 계보가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 흐름은 문주가 제작에 참여한 이오아나 유리카루 作 [레모네이드]와 같은 최신 영화로 현재 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현실 상황 속에서 표현되었던 예술의 색감과 스타일이 계속해서 이전과 다른 시점에서 탄생하는 흐름. 그 흐름 속에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가 흐르고 있다. 같은 현실 상황도 오틸리아와 같은 캐릭터의 존재처럼 시차적 관점을 도입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색다른 시각, 각양각색의 주제, 독특한 색감 그리고 카메라로 직접 들어가 깊은 응시를 보여주는 것이 루마니아 뉴웨이브 영화이지 않을까.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지 않고 성찰하게 만드는 카메라.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차적 관점. 이 점을 유념하고 뉴웨이브 영화를 감상한다면 직접 그것을 찾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정리. 주창민 모모 9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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