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은 그 동안 영화사 백두대간과 인연을 맺었던 거장 감독 또는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기록합니다.
장 뤽 고다르 - 누벨바그 실험정신의 대명사

"예술은 우리의 비밀스러운 자아를 드러나게 할 때만이
우리를 매혹시킨다."
- 장 뤽 고다르
고다르의 영화는 변화무쌍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래서 그의 영화는 바로 그 자신의 주장했던 ‘작가(auteur)'라는 틀로 작품을 들여다보려는 연구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알파 빌>같은 SF가 있는가 하면 뮤지컬 코미디를 차용한 <여자는 여자다>같은 작품도 있고, <중국 여인>의 강도 높은 정치적 발언과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같은 짙은 서정이 그의 영화세계에서 공존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변혁”뿐일 것이다. 기존 관습에 대한 부정, 주류문화에 대한 부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걸어온 길까지도 부정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고다르는 항상 ’변혁‘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모든 감독들로부터 고다르를 구분 짓는 기준이다.
씨네마떼끄 프랑세즈, 누벨바그, 그리고...“네 멋대로 해라!”
“<까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에서 글을 쓰던 시절처럼 지금도 나는 비평가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비평을 글로 썼지만 지금은 영화로 쓴다는 것뿐이다.” -Godard
1930년 프랑스 빠리에서 출생한 고다르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청년시절 씨네마떼끄 프랑세즈를 드나들면서 고다르는 후에 모두 감독으로 데뷔해 누벨바그의 주역이 된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 에릭 로메르(Eric Rohmer),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자끄 리베뜨(Jacques Rivette)등을 만났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을 만나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접하고 토론하면서 영화적 감각을 키웠다. 1950년<가제트 뒤 씨네마 Gazette du cinema>지에 한스 루카스(Hans Lucas)라는 필명으로 영화 평을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고다르는 1952년에 <까이에 뒤 씨네마>지의 주요 평론가로 등장했고 2년 후인 1954년에는 편집진으로 활약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고다르를 비롯한 당시 프랑스의 젊은 비평가들은 그때까지 유럽평단에서 등한시해왔던 존 포드(John Ford),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하워드 혹스(Howard Hawks), 니콜라스 레이(Nicholas Ray) 등 할리우드 감독들의 영화에서 상업주위 시스템에 굴복되지 않은 일관된 스타일을 발견하고 이들을 작가(auteur)로 추앙한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이후 영화 비평론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는 작가주의의 시초가 된다. 한편 고다르는 미국의 B급 영화들의 “경제적인” 제작 시스템 - 즉흥에 가까운 연출,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는 평면적 화면 - 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 점 역시 이후 고다르의 작품의 주요한 미학적 모티브가 된다.
비평가로서 “칼보다 강한 펜”을 휘두르며 몇 편의 단편영화를 찍던 고다르가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집어든 것은 1969년, 그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는 발표 즉시 격렬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이어 같은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의 감독상, 음향상, 촬영 상을 석권하며 고다르는 일약 세계 영화계의 총아로 떠오른다. 이후 알제리 전투로 혼란된 사회상을 표현한 <작은 병사 Le Petit Soldat>, 뮤지컬의 경쾌함을 효과적으로 접목시킨 <여자는 여자다 Une Femme est Femme>, 인간을 상품화시키는 사회 속에서 파멸되는 한 여자의 삶을 탁월하게 영상화한 <비브르 사비 Vivre Sa Vie>, 현대 문명을 예리하게 파헤친 SF물 <알파빌 Alphaville>,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묘사한 <미치광이 삐에로 Pierrot le Foe>등 일련의 문제작들을 내놓으면서, 고다르는 누벨바그 실험정신의 대명사로 대두된다.
영화를 통한 혁명, 혁명을 위한 영화
“사람들은 누벨바그가 오직 침대 속에 있는 사람들만 보여준다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치 속에 있고 서로 함께 침대로 갈 시간이 없는 어떤 사람들을 보여 주겠다.” -Godard
1967년 발표한 <주말 Le Week-end>은 고다르의 영화가 정치적 색채를 띄기 시작한 전환기적인 작품. 고다르는 이 작품에서 주말에 휴식을 갖는 한 부르주아 커플을 통해 자본주의의 혼돈과 잔인성을 가차 없이 고발한다. <주말>에서 싹을 틔운 고다르의 사회주의적인 성향은 중국의 문화 대혁명을 모티브로 한 <중국여인 La Chinoise>에서 결정을 이루는데, <주말>과 같은 해에 제작된 이 작품은 고다르가 당시 얼마나 모택동의 사상에 매료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일례이다.
1968년 이후, 고다르는 당시 <까이에 맑스 - 레닌주의자 Cahiers Marxist-Leninste>의 편집장 장 피엘 고랭을 만나면서 더욱 더 급전적인 맑시즘 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은 고다르가 급진적 영화단체 ‘지가 베르토프 집단 Dziga Ventov Group' 결성에 관여하는 토대가 된다. <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영화 Un Film Comme Les Autres>, <대영제국의 소리 Britsh Sound>, <프라우다 Pravda> 등 이 지가 베르토프 집단에서 활동하던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들, <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영화>는 1968년 5월 혁명을 그린 16mm 영화로, 자동차 노동자들과 학생들 간의 토론을 기록한 것이다. <프라우다>역시 러시아의 체코침공에 대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가상으로 진행한 토론을 담은 작품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피력한다.
위의 작품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동경을 그린 작품이라면, <즐거운 지식 Le Gail Savoir>, <원 플러스 원 One Plus One>, <동풍 Vent D'est>,<제인에게 보내는 편지>등의 작품은 고다르가 부르주아 사회를 향해 신랄한 비판을 가함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일례로 <렛스프레스 L'express>誌에 실린 사진에서 모티브를 따온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 to Jane>는 고다르가 그토록 증오한 부르주아의 본질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문제의 사진은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북 베트남을 방문한 제인 폰다의 모습을 찍은 것. 어떤 사진에서는 제인 폰다가 전쟁에 지친 병사들을 동정하듯 슬픈 표정을 짓다가도 어떤 사진에서는 유유자적하게 미소를 짓는데, 고다르는 제인 폰다의 이런 위선이 곧 자본주의의 이중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제인폰다가 이렇게 자유자제로 표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자본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결국 베트남 병사들에 대한 그녀의 동정이란 값싼 제스처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제인..>이후에도 고다르는 고랭과 함께 많은 작품을 시도했지만 상당부분 미완성으로 그쳤고, 그나마 완성된 작품들도 거의 공개되지 못했다.
고랭과의 결별, 미에빌과의 만남 - 이제 혁명은 끝났다.
“낭트의 부두에서 발생한 파업을 나는 영화로 만들 수가 없다, 그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설령 만든다 해도 형편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Godard
68년 5월 혁명의 실패는 전 유럽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절망을 안겨다 주었고, 고다르 역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72년작 <만사형통 Tout Va Bien>은 혁명의 실패로 인한 고다르의 심적 변화를 대표적으로 나타내주는 작품. 소재로만 본다면 이전의 관심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파업을 다루고 있지만, 당대의 톱스타였던 제인 폰다와 이브 몽땅을 주인공으로 기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다르가 다시 상업 영화 시스템 안으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작들과 구분된다. <만사형통>이후 고다르는 고랭, 정치, 파리 모두와 결별하고 세 번째 부인이자 동업자인 안느-마리 미에빌(Anne -Marie Mieville)과 함께 그레노블로 떠난다. 여기서 그들은 ‘소니마쥬(SonImage- 프랑스어로 사운드와 이미지)’라는 작은 영화사를 설립하고 제작 자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비디오 매체로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그들의 첫 번째 기획은 <이곳과 어떤 곳 Ici et D'ailleurs>. 이 작품은 한창 예민한 시기의 팔레스타인을 다루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혁명에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다. 요르단 게릴라들의 훈련 장면에 광고의 망령에 사로잡힌 프랑스 소비자의 모습을 중간 중간 인터커트로 삽입하면서 고다르는 ‘어떤 곳’(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이곳(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연관성을 우회적으로 질문한다. 이즈음의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정치적인 영화들의 궁극적인 관객은 나의 가족이며, 그것은 곧 나 자신에 관한 영화”라고 밝혔고 이러한 입장은 곧 이후의 작품들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2번 Numero 2>, <두 어린이의 프랑스 일주 France Tour Detour Deux Enfants>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나는 돌아갈 것이다, 다시 펜과 종이로...
“만일 영화가 사라질 운명이라면, 나는 텔레비전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다. 텔레비전이 사라질 운명이라면 나는 연필과 종이로 되돌아갈 것이다.” -Godard
스위스 영화산업의 성장은 고다르를 반 은둔상태에서 끌어내 다시 영화제작에 복귀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그 결과가 <인생 Sauve Qui Peut (La Vie)>과 <열정 Passion>이다, 특히 이 두 작품의 뒤를 이은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 Pr?nom Carmen>은 고다르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꽃핀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상, 음악상, 촬영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파리와 런던에서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마리아께 경배를 Je Vous Salie Marie>, <리어왕 King Lear>, <누벨바그 Nouvelle Vague>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표한 <모짜르트는 영원히 Forever Mozart>에 이르기까지, 새로움에 대한 그의 욕구는 여전하다. 고다르의 영화는 끊임없이 변신해왔고 영화광들을 계속해서 열광시키고 있다. “사회적(악)조건에 대한 규탄은 그 조건의 토대를 이루는 체제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악)조건에 대한 비난은 그 예술이 수용하는 형식의 파괴로 발전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난다 해도, 감독이 늙어간다 해도, 자신이 천명한 이 입장에 서있는 한, 고다르라는 이름은 언제나 파격과 실험의 대명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도착하던 날, 이곳의 언론들은 “얼마 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자신의 전 작품이 상영될 때도 얼굴을 보이지 않던 고다르가 이곳에 왔다.”고 흥분했다. 로카르노 영화제와 스위스 정부가 헌사하는 금표범상을 수상하러 무대에 오른 고다르는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든 청중들은 아랑곳없다는 듯, 금표범상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옆에선 집행위원장에게 맡긴 채 상금 2만 프랑이 든 봉투를 국제사면위원회(AMNESTY)에 바로 넘겨주었다. 약간 오만함이 깃든 초연함, - 역시 고다르에게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영화 평론가 임안자씨의 95년 로카르노 영화제 스케치 중에서)
Filmography
• 1964년 단편 <콘크리트 작전 Operation Beton>
• 1955년 단편 <요염한 여인 Une Femme Coqutte>
• 1957년 단편 <모든 소년의 이름은 파트릭 Tous les Garcons S'appllent Patrick>
• 1958년 단편 <샤를로뜨와 그녀의 쥘 Charlotte et Son Jules> 단편 <물 이야기 Une Histoire d'Eau>(프랑소아 트뤼포와 공동 연출)
• 1959년 <네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음향상, 촬영상, 뉴욕타임즈 선정 최우수 외국어 영화, 타임지 선정 최우수 외국어 영화
• 1960년 <작은 병사 Le Petit Soldat> -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61년 <여자는 여자다 Une Femme est Une Femme>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여우 주연상(안나 까리나),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62년 <비브르 사비 Vivre sa Vie>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및 언론상, 이탈리아 비평가 협회상 <신세계 Le Nouveau Monde> (로베르토 로셀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유고 그레고레티와 공동감독한 RoGoPaG 중 한 편) 뉴욕 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63년 <카라비니에 Les Carabinies>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뉴욕 타임즈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영화 <사기꾼 Le Grand Escroc>, <경멸 Le Mepris>
• 1964년 <국외자들 Bande ? Part>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결혼한 여자 Une Femme mariee>
• 1965년 <알파빌 Alphaville>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미치광이 삐에로 Pierrot le Foe> 뉴욕 영화제 공식 초청작 Sight & Sound 誌 선정 최우수 영화, 프랑스 비평가 협회 선정 최우수 영화 <몽파르나스와 르발루아 Montparnass et Levallois>(끌로드 샤브롤, 장 두셰트, 장 다니엘 폴레, 에릭 로메르, 장 로치와 함께 한 파리 스케치 중 한편)
• 1966년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2 ou 3 Choses que je sais d'elle> 뉴욕 영화제 공식 초청작 <메이드 인 U.S.A Made in U.S.A> <남성 - 여성 mASCULIN - Feminin>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67년 <카메라의 눈 Camera - oeil>, <중국여인 La Chinoise>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주말 Weekend>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Take One 誌 선정 최우수 유럽영화 (자끄 드미와 공동 감독) 뉴욕 영화제 공식 초청작 <미래, 전망, 또는 2000년 L'Anticipation, ou l'an 2000>
• 1968년 <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영화 Un Film Comme Les Autres> <즐거운 지식 Le Gail Savoir>, <원 플러스 원 One Plus One>
• 1969년 <대영제국의 소리 British Sounds>, <프라우다 Pravda>, <동풍 Vent d'est>
• 1970년 <이탈리아에서의 투쟁들 Luttes en Italie>, <승리할 때까지 Jusqua la Victoire>
• 1971년 <블라디미르와 로자 Vladimir et Rosa>
• 1972년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A Letter to Jane> <만사형통 Tout va bien>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73년 <여기와 저기 Ici et D'ailleurs>
• 1975년 <2번 Numero 2>, <어때 Comments Ca Va>
• 1976년 <6 X 2 Six Fois deux> (비디오 작품)
• 1978년 <두 어린이의 프랑스 일주 France tour Detour Deux enfants>(비디오 작품)
• 1979년 <인생 Sauve qui peut(la vie)> 뉴욕 영화제 공식 초청작, 뉴욕 타임즈 선정 최우수 영화
• 1981년 <열정 Passion> 칸느 영화제 촬영상,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82년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 Prenom Caemen>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 1984년 <마리아께 경배를 Je Vous Salue Marie>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85년 <탐정 Detective>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86년 <영화라는 사소한 비즈니스의 영광과 퇴폐 Grandeur et Decadence>(비디오 작품) <아르미드 Armide> (아리아 Aria의 한 편)
• 1987년 <리어왕 King Lear>, <오른쪽을 주의하라 Soigne Ta Droite>
• 1988년 <세계 영화사 제 1부 Histore(s) du Cinema> (전 10장 중 1,2장 비디오)
• 1990년 <누벨바그 Nouvelle Vague>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
• 1991년 <신독일 영년 Allegmagne Anne Neuf Zero>
• 1993년 <오 슬프도다 Helas Pour Moi>
• 1994년 <고다르의 자서전 JLG by JLG> <세계 영화사 제 2부 Histore(s) du Cinema> (전 10장 중 3,4장 비디오)
• 1995년 <프랑스 영화의 2X 50년 Delf Fois Ciquante Ans de Cinema Francais> (비디오)
• 1996년 <모짜르트는 영원히 Forever Mozart>
• 1998년 <영화의 역사 Histoire(s) du cinema>
• 2001년 <사랑의 찬가 In Praise of Love>
• 2002년 <텐 미니츠-첼로 Ten Minutes Older: The Cello>
• 2004년 <아워 뮤직 Our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