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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은 그 동안 영화사 백두대간과 인연을 맺었던 거장 감독 또는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기록합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시간에 새긴 삶, 영화로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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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예술과 다르게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고 그려낼 수 있다.

때로는 잠시 멈추어서 영원에 머물게 할 수도 있다.

영화는 시간을 조각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외롭지만 위대한 삶을 산 타르코프스키 

 

작품으로써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으리라 

 

- 어려운 시절에 체제와 구속에 타협하지 않고 자유라는 신념을 위해 십자가를 진 고행자와 같았던 영화인... 

 

-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섬세하고 진지한 그러면서도 자신의 영 화 작업에서는 누구보다도 정열적인 면모를 갖춘 영화인... 

 

- 집요하리만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한 작가... 

 

1986년 12월 29일, 54세의 아까운 나이로 영화사의 거장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타르코프스키는 7 편의 걸작들을 세상에 남겼다. 단 한 편의 실패작도 없이 감독으로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다간 타르코프스키는 영화 사조에 편승하거나 영합하지 않으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일관되게 추구한 감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타르코프스키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따내고 감독으로부터, 비평가로부터, 관객으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가 살아간 삶은 고통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영화 감독으로 활동했던 24년 동안 18년은 실질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었다”고 한 그의 말에서 나타나듯이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국 러시아에서 박해를 받았으며 예술 활동의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망명길에 올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향수병에 시달리며 고달픈 유랑 생활을 하여야 했다. 

 

타르코프스키에게 영화는 영화 직업인이 하는 일종의 ‘일거리’가 아니었으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빛의 기록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영화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고유한 방식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는 영화로 우리에게 묻는다. 한 인간으로서의 예술가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의 삶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가장 충실한 대답이 될 것이다. 

 

‘금세기 최고의 감독’,‘영화사의 기적’,‘위대한 영상 시인’. 타르코프스키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말들이다. 이와 같은 수식어들은 세계 영화史에서의 그의 위치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그가 만든 작품 하나 하나는 늘 찬사와 경탄 속에 세계 영화계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왔다. 

 

[제 7의 봉인],[화니와 알렉산더],[산딸기] 등을 감독한 세계적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처음 대하던 때를 기적과 같은 순간이었다고 묘사하면서 “만약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위대한 영상시인이 있기 때문이고 타르코프스키야말로 영화라는 매체에 적합한, 고유한 영상 언어를 창조한 가장 위대한 영화 감독”이라고 극찬하고 타르코프스키를 “영화史上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추앙하였다. 

 

또한 [길], [8 1/2]의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에 기립 박수를 보냈으며 [정사],[붉은 사막]의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83년 [노스텔지아]가 깐느에 초대되었을 때 타르코프스키를 직접 찾아가 존경을 표시하였다. 

 

빔 벤더스는 자신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그에게 헌사하였으며, 프랑스 누벨 이마쥬의 기수 레오스 까락스조차도 “모던 시네마 이후의 유일한 시네아스트”로 타르코프스키에게만은 존경을 표하였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이 다른 감독들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자신의 작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이었다는 <집시의 시간>의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의 술회는 타르코프스키가 후배 감독들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사실을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대한 찬사는 이처럼 그가 죽은 현재까지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그를 찬양하는 현대 거장들의 영화 속에, 그의 영화를 사랑한 많은 관객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세계 영화계 거장들의 찬사 속에서 거장 중의 거장으로 

영원히 살아있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가장 위대한 영화 감독,타르코프스키!” 

- <화니와 알렉산더>의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 

 

“ 내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 

-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감독 빔 벤더스- 

 

“ 타르코프스키,모던 시네마 이후 유일한 시네아스트” 

- <퐁네프의 연인들>의 감독,레오스 까락스- 

 

“ 그의 영화는 내 작품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집시의 시간>의 감독,에밀 쿠스트리챠- 

 

“타르코프스키는 동시대의 어떤 영화도 능가할 수 없는 영화적 탁월함에 도달했다” 

-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 

 

“분명히 타르코프스키는 개인적인 언어와 은유적인 시선으로 지각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해낸 몇 안 되는 감독이자 시인이다” 

- 빌리지 보이스

 

Filmography

 

1932년 4월 4일 볼가강 유역의 짜프로찐 출생

1854년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VGIK에 입학

1959년 감독

1960년 졸업 작품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감독 -뉴욕 학생 영화제 그랑프리

1962년 <이반의 어린 시절>로 데뷔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1966년 <안드레이 루블료프> 감독 -1969년 칸느영화제 그랑프리(특별 심사위원)

1972년 SF 대작 <솔라리스> 감독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특별 심사위원)

1974년 <거울> 감독

1979년 <스토커> 감독 -칸느영화제 그랑프리 (‘경이의 영화’부문) ‘예술 활동의 자유’를 찾아 이탈리아로 망명

1983년 <노스탤지아> 감독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창조’부문) 최우수 감독상 수상 국제 영화 비평가 협회상

1986년 <희생> 감독 -칸느 영화제 그랑프리(특별 심사위원) 최우수 예술 공헌상(촬영상) 기술상 국제 영화 비평가 협회상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외국영화부문) 그 해 12월 29일 54세의 나이로 사망